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집’이라는 공간은 오랫동안 한 곳에 정착하고, 일정한 틀 안에서 살아가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정착 중심의 주거 개념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특히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도시의 고정된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유의지는 ‘이동 가능한 집’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냈다.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생활하는 차박부터, 주방과 화장실까지 갖춘 캠핑카, 심지어 바퀴가 달린 이동형 주택까지—고정된 거주지가 아닌 ‘움직이는 집’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 새로운 주거 방식은 단순히 삶의 공간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주(定住)와 이동 사이, 전통과 미래 사이에서 우리가 ‘집’을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함께 던진다. 과거의 집은 안정적인 삶의 기초였지만, 이제는 변화와 모험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차 안에서의 하루: 차박의 일상화
‘차박’은 이제 캠핑 마니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잠깐의 탈출을 원하는 직장인, 주말마다 자연 속에서 힐링을 찾는 1인 가구, 혹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족 단위까지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SUV나 미니밴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사람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공공시설 이용에 제약이 많아지자, 차박은 비대면적이고 독립적인 여행 및 주거 방식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차박의 핵심은 바로 자유로운 이동성과 적응성에 있다. 사람들이 고정된 집이 아닌 이동할 수 있는 생활공간을 선택함으로써, 정해진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차박은 자연 속에서의 고요함을 만끽하고, 도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체험하는 데 매우 적합한 방식이다. 물론 위생 문제나 주차 공간, 공공질서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도 공존하지만,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차박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일상을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차박은 단순한 잠자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자유로운 삶의 표현 방식이 되고 있다.
캠핑카, 집을 달리는 또 하나의 방식
캠핑카는 과거에는 은퇴한 부부의 여행 수단 혹은 캠핑 마니아의 로망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일상적인 주거 수단으로 인식이 확장되고 있다. 최신 캠핑카는 와이파이, 태양광 패널, 무시동 히터 등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면서 점점 더 ‘집’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재택근무가 가능한 디지털 노마드들이 이 방식에 눈을 돌리면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캠핑카는 월세나 관리비 부담 없이 자연 속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도심의 고가 아파트나 월세에 지친 이들에게, 캠핑카는 비용 효율적인 동시에 해방감을 주는 대안이 된다. 더 이상 전통적인 아파트나 집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캠핑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도 충분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물론 수도, 전기, 하수 등 편의시설의 확보는 여전히 과제로 남지만, 이마저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차 해결되고 있다. 캠핑카는 이제 ‘집이 반드시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는 상징적인 주거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점차 주거의 개념을 넘어, 생활의 방식에 대한 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모빌홈과 이동형 주택의 가능성
이동형 주택은 단순히 집을 바퀴 위에 얹는 것을 넘어, 삶의 방식 자체를 이동과 융통성 중심으로 재설계한다. 특히 ‘작지만 충분한 집’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나, 은퇴 후 시골에서 소박한 삶을 원하는 중장년층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모듈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동형 주택은 공장에서 제작 후 현장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공사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저렴하다. 또, 필요에 따라 해체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어 기존 주택과는 다른 자유로움을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법적 제약과 기준 미비로 인해 이동형 주택의 정착이 더딘 편이지만, 관광지 숙박용, 별장 대체용 등으로 활용되며 점차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단순한 거처가 아닌, 삶의 질을 고려한 ‘맞춤형 주거’라는 점에서 앞으로 주목할 만한 가능성을 지닌 형태다. 이동형 주택은 또한 ‘집’이라는 고정된 개념을 벗어나, 생활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가능한 유연한 주거 방식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특성은,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동형 주택을 선택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동형 주거의 장점은 자유와 유연성에 있지만, 단점 또한 분명하다. 정기적인 유지 관리와 차량 등록 문제, 상수도 및 하수도 시스템 부재, 냉난방비 부담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특히 교육, 의료, 행정 서비스 접근에서 불편함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기존 고정 주거 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하는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이는 단지 주거 방식의 변화라기보다는, 삶의 방향성과 가치를 재설정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주거 방식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결국 ‘집’이란 고정된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형 주거는 대중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고정된 집을 갖지 않으면서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다.
캠핑카와 차박, 이동형 주택은 단지 새로운 주거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법이며, ‘정착’이라는 오랜 삶의 전제에 대한 도전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삶을 반복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연과 더 가까이에서, 더 단순하게 살며, 더 많이 경험하고자 한다. 집은 이제 단지 주소가 아닌, 삶의 태도를 담는 그릇이 되고 있다. 이동형 주거는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그들이 이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 도피가 아닌 ‘선택’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집의 모양이나 위치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얼마나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새로운 형태의 주거 실험은 더 이상 소수의 취미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방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