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집’이라는 개념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구성되는 공간이었다. 거실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고, 부엌은 어머니의 영역이었으며, 자녀의 방은 학업과 성장의 무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정의 형태는 급속히 다양해졌고, 특히 1인 가구의 증가는 주거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제 집은 더 이상 공동체의 중심이 아닌, 개인의 삶과 취향을 담아내는 공간이 되었으며, 그에 따라 등장한 것이 바로 ‘원룸’과 ‘오피스텔’이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주거형태가 어떻게 등장하고 발전해 왔는지, 어떤 배경 속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이 변화는 단순히 공간의 구조 변화에 그치지 않고, 주거를 바라보는 사회 전반의 인식까지도 변화시켰다. 특히 도시화와 고도화된 정보 사회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분화되어 왔는지를 주거 형태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산업화 이후, 1인 거주의 씨앗이 싹트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1인 가구 주거 형태가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1980~9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청년 노동자,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학생들,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미혼 직장인들은 가족과 분리된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넓고 화려한 집이 아닌, 잠시 머물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초기의 고시원이나 하숙집은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형태였지만, 점차 독립된 욕실과 부엌이 있는 소형 주거 형태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원룸’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다세대주택에서 공간을 쪼개거나 아예 1인 가구 전용으로 설계된 소형 주택으로 진화하며,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원룸 형태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의 원룸은 단순히 거주 공간 그 이상으로, 도시에서의 생존을 위한 최소 단위의 자립 공간이었다. 점차 생활가전이 들어오고, 보일러나 에어컨 등의 기본 시설이 갖추어지며, 원룸은 점점 더 일상적인 주거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피스텔의 등장, 일과 삶의 경계를 흐리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오피스텔’은 ‘오피스’와 ‘호텔’의 합성어로, 본래는 사무공간을 기반으로 하되 주거도 가능한 형태로 설계된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상업지에 위치한 사무실 개념이 강했지만, 점차 욕실, 부엌, 수납공간 등 기본적인 생활 요소를 갖추면서 주거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부동산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틈새 상품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분양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투자용 상품으로도 자리 잡게 되었다. 오피스텔은 원룸보다 비교적 넓은 평형대를 제공하면서도 건물 내 관리 시스템이나 보안, 커뮤니티 시설 등의 장점이 있어, 1인 가구는 물론 신혼부부나 직장인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올랐다. 여기에 더해, 주차 공간 확보, 엘리베이터 설치, 상업시설과의 접근성 등에서 아파트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며 ‘소형 아파트’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또한 월세 수익형 부동산으로 각광받으며 임대 시장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인 가구 증가와 주거 문화의 변화
2020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고령화, 비혼주의, 만혼, 이혼율 증가, 개인주의 확산 등 복합적인 사회변화의 결과다. 자연스럽게 주거시장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변화했다. 기존의 ‘가족 중심’이던 주거문화는 ‘개인 중심’으로 전환되었고, 실용성과 효율성, 그리고 비용 대비 만족도를 중시하는 주거 형태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특히 원룸과 오피스텔은 관리비 부담이 적고 출퇴근이 용이한 도심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아, 1인 가구가 주거를 선택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건축 설계나 부동산 개발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크고 좋은 집’이 아닌,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이 핵심 가치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여성 1인 가구의 증가와 맞물려, 보안 시스템, 택배 보관함, CCTV 등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설계가 강조되며 주거 트렌드는 계속해서 세분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반응을 넘어, 주거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역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의 원룸과 오피스텔은 단순히 좁은 공간이 아닌, 효율적인 설계와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무장하고 있다. 수납을 극대화한 빌트인 시스템, 가벽으로 분리한 공간, 복층 구조를 활용한 입체적 배치 등은 작은 공간에서도 쾌적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 공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홈오피스, 홈카페, 홈트레이닝 공간 등 다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원룸과 오피스텔이 등장하고 있으며, 일부 건물은 공유 주방, 루프탑, 코인 세탁실, 택배함 등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시설까지 제공하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실내 공간의 심미적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인테리어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의 유무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단기 임대 플랫폼과 결합된 ‘하우징 서비스형 오피스텔’이 등장하고, 임대 관리까지 포함한 올인원 시스템이 확대되며, 이제 원룸과 오피스텔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주거+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복합 주거 상품으로 진화 중이다.
원룸과 오피스텔의 역사는 곧 1인 가구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한다. 과거에는 소외된 형태의 주거였던 이 공간들이, 이제는 도시의 가장 역동적인 삶을 담는 주요 무대가 되었다. 1인 가구는 단순히 인구 통계상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가치관과 문화 자체를 바꾸는 주체로서 주거 시장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비록 작은 공간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선택과 취향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보다 다양한 소형 주거 형태와 서비스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나에게 딱 맞는 집’을 찾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소형 주거 형태는 도시 공간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향후 도시 재생이나 스마트시티 설계에서도 중요한 주거 유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원룸과 오피스텔은 단지 작은 집이 아니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를 반영한 가장 밀도 높은 주거 실험이자, 동시대 도시 주거문화의 핵심이다.